잔다르크라는 영화를 보면 잔다르크가 마녀라는 지탄을 받으며 화형되기 전에 주교에게 이런 말을 한다.
"주교님 고해성사를 받게 해 주세요"
 그렇나 주교는 그녀의 고해성사를 싸늘히 거부한다.
그러자 잔다르크는 이런 말을 한다.

"주교님 나는 육신의 자유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자유를 원합니다."

영혼의 자유...
살았는 동안 육신의 자유는 세상 그 어디에 있던지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혼의 자유는 자신이 어디에 있던지 어떤 상태였나에 관계 없이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아앉으니 극락이더라는 불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부처를 품고 살 것이고, 누구나 예수를 품고 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인지라, 인간의 마음인지라 극락도 천국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는 영혼의 자유를 얻었다.

이제 나는 영혼의 자유를, 나만의 영혼의 자유를 갈구할 것이다.

이기주의자라고 할지 몰라도 그건 당신네들의 판단일뿐, 개인의 영혼의 자유는 어느 누구도 얻어 줄 수 없다. 나는 나의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고 얻을 뿐이다.

말이 말을 만드는 세상,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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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사랑하고 있을까?

조화가 생화를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너는 나의 그림자 배경만 바라보고
나는 너의 미소만 바라보면서
뜨거운 심장의 언어를
한마디도 듣지 못하면서
우린 정말 사랑라고 있을까?

우린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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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歌 # 13
            - 미련한 사랑

당신은 제 가슴 속에 계시지만, 당신의 가슴 속엔 저는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숨결을 느끼고, 당신에게서 풍겨오는 싱그러운 아침 공기와 같은 상쾌한 향기를 느낄 수 있지만, 당신은 저를 느끼지 못하시고, 바라 보지도 않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당신에게 무채색일 뿐이니 말입니다.
저의 존재가 당신에겐, 당신의 가슴에 맺히기도 전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같은, 땅바닥에 떨어져 흩어지는 빗방울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지만, 언젠가 당신의 가슴 속에 조용히 스밀 그 날을 기약 아닌 기약을 하며, 오늘도 당신을 제 가슴 속에 새겨 봅니다.

비록 저 혼자 울고, 저 혼자 웃으며, 저 혼자 행복에 젖을 뿐이겠지만, 언젠가 당신의 가슴 속에 맺힐 그 날을 기약하며, 당신을 바라보옵니다.
그 날을 기약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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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歌 # 12
        - 굽이진 길

굽이 굽이 굽어진 길
그 길
가시는 님이여,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돌아 오실꼬.

굽이 굽이 굽이진
인생
이내 질긴
목쉼줄
연명하고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꼬?

뿌연 흙먼지 날리우는 길
먼지 너머 새긴 발자국
자국 자국 지우며
가시는 님이여
어찌 어찌
다시 돌아오시려,
내딛는 걸음마다
새겨지는 발자국
흔적없이
싹 지우고 가시옵니까

무정히 지우시고 가시우면
이내,
어떻게 찾아 가라고
야박하게,
야박하게
그 흔적,
지운다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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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뭐래도 작가지향으로 독서를 하는 주의다. 한 작가를 좋아하면 그 작가가 쓴 과거의 작품부터 현재의 작품, 그리고 미래의 작품까지 기다리면서, 작가의 필력이 말라버릴때까지 찾아서 읽는 조금은 스토커 같은 책읽기를 하는 주의다.

신경숙이 그랬고, 양귀자가 그랬고, 박효서가 그렇고, 윤대녕이 그렇고.. 그렇고.. 그렇고..

그러면서 그들 글의 진화와 퇴보를 느끼며 응원과 안타까움을 가지는 주의다.

오래간만에 이문열의 책을 접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문열의 골수팬이다. 그가 인터넷이나 신문이나 서평에서 왈가불가 하는 것에는 별시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글로써 설명이 되어지는 존재이지 다른 이들의 논평으로 그를 이해하기가 싫어서이기 때문이다.(누군가의 관점에 의해 소개된 책을 선택한다는 것이 자신과 맞지 않을 경우는 상당히 난감하다)
근간 몇년 동안 정치적인 시류에 휩싸여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때에도 나는 그의 글을 보고 그를 이해하지 하는 생각에 한시도 작가로서의 이문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이문열의 신작 호모 엑세쿠탄스
일단 다른 말은 접어두고 실망이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고, 이문열이 왜이리 망가졌지, 왜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내용을 손수 꺼집어 내어 쟁점화 하려고 하고 있지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출판사의 얄팍한 상술이 이문열이라는 브랜드와 접목하여 빚어낸 것하며 책을 읽는 내내 실망스러웠다.

출판사의 책 편집에 대해서 먼저 꼬집겠다. 
독자들이 편하게 읽게 하기 위해서 글자의 크기나 판형 사이즈에 신경을 쓴거이라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개인적인 견해에서는 이 책의 판형이나 글자의 폰트 사이즈를 조금만 다르게 해서 편집을 했다면 굳이 이 책을 3권으로 나눌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권으로도 충분히 편집이 가능한데 말이다.
글자 크기와 장평을 늘려서 편집했다는 교묘한 상술을 느끼게하는 편집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1권에 나오는 뛰어쓰기 오타... 이문열에게 들어간 인세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조금은 아쉬운 책 편집이다.

이문열은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그 동안 휩싸이게 했던 정치적인 논쟁에 대해서 잊고 이 책을 바라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를 위대한 글쟁이자 이야기꾼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아들의 속편격이니, 자신의 필력의 진화 단계 선상에 있는 이야기로 읽기를 호소했다.
다른 정치적인 논객들이 이 책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나도 작가의 이 말에는 찬성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되어지고 작품 원문으로만 해석이 되어져야지 그 외의 주변 환경으로 인해 작가의 작품이 오염되지는 말아야하고, 책을 읽는 내 생각이 중요하지 누구의 언변이나 비평이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독자반응비평에 가까운 마인드이기 때문에. 즉, 독자가 좋다고 하면 그 작품은 좋은거다라는...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이런 간곡한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은 개인적인 소감은 이문열은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라는 것이다.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인터넷상의 악플에 대한 것이며, 그의 정치적인 입장하며, 그 자신을 괴롭히던 그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가 작품 속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문에서는 그런 우려를 모두 걷어내고 봐 달라고 했지만, 작가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지하는 인상을 받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서문의 그런 입장 표명이 없었다면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작가 자신이 우려했던 내용이 글을 읽는 독자로서 그대로 느꼈다는 것은 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글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사람의 아들에서처럼 신의 재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와 그리고 그의 재림을 통해 빚어지는 이익집단의 이야기

전자에 대한 이야기 구조는 판타스틱 하면서도 읽는 재미를 솔솔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런 이야기 중간중간에 후자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전자의 이야기 구조에는 크게 거부감이 없지만, 후자의 배치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문열이 하지 못했던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나하는 느낌을 받게 했다.
주인공의 어중간한 성격은 이문열 자신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곳에도 간여하기 싫었는데, 자꾸 자신을 그런 쪽으로 주변에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의 어중간한 판단력을 빌어 항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당신을 믿고 있는 나로서는 당신의 그런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 없어도 충분히 당신의 글을 읽음으로써 당신에 대한 굳은 신뢰를 지키고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당신의 작품을 빌어 스스로 무덤을 팔 필요까지 있었는지가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여하튼 이 번 작품에 대한 실망은 너무나 큽니다. 그리고 독자 반응 비평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염?, 이 작품이 어떻게 읽혀지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희망이지만 읽는 독자는 또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다르게 볼 수 있겠지요, 그걸 인정하시겠지만, 알고 계시겠지만 일일히 왈가불가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침묵.. 그게 요즘 세태에서 제일 필요한 미덕이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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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이름으로 산데도

바람결에 하염없이 떠돌다
사라지는  하얀 연기처럼,
조용히 잊혀져 간데도
나는,
행복하더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 알 수 없는 끝의 막막함으로
잊혀져 간데도
나는,
행복하더이다.

바람결에 날려
어느 차가운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잊혀진 이름으로 한평생
산데도
나는 행복하더이다.

내가 그리워할 수 있고,
떠올리기에 행복한 미소
그려지는 그대는
아직,
내 맘 속 화석으로
남아 있으니.

잊혀진 이름으로
잊혀져 간데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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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을 다니다 보면 "Jesus Love you"라는 광고 문구와 같은 느낌의 카피를 만나거나 외침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런 문구나 소리를 들을때마다 '피씩' 웃어 버린다.
그렇게 내걸은 교회나 선교사들의 공동적인 마지막 말은 자신의 종교나 자신의 교회로 나오라는 이야기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기에..
나는 종교나 모든 것에서 선을 긋기는 긋는 편이지만 기본적인 마인드는 다원주의 사고 방식을 취한다. 그렇기에 모든 종교는 존중을 받을 일차적인 가치는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기주의적인 종교관을 증오한다.

서울역 앞에서 매번 만나는 유랑 극단 같은 느낌의 선교회...

그 앞이나 옆에 널부러져 있는 홈리스들..(나도 솔찍히 홈리스들의 일부 마인드를 좋게 생각을 안한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마라는 주의다...)

음악의 황연..

소돔의 불길을 보는 느낌이 든다..

God not love you 이 말이 입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혹시 일부의 분들께서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마라는 주의다..." 이 문구를 가지고 토를 달겠다면 하시지를 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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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歌 # 16
     - 수련을 바라보며

달빛 맑게 흐르는
저 호수에
이내 그리운 마음 담아
한송이 꽃을 피울테니,
그대 그 꽃 꺽어가사
처마끝에 걸어 두었다가
어둔 밤길 떠나오시랄제
그 꽃 길잡이 삼아
어둔밤,
건너 오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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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과 수련이 같은 꽃인줄 알고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전혀 다른 꽃이다.
꽃말을 보니 청초한, 청순한 삶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꽃이라기 보다.. 그리움으로 피어낸 연등을 보는듯하다.

그러고 보니 사랑을 테마로 글쓰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연작 시리즈를 오래간만에 쓴다. 물론 다른 글에도 사랑과 기다림의 연정이 기본으로 깔려 있지만 애가 시리즈로 붙이지는 않았다. 간절한 그리움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오래간만에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다.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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