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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습은 초췌해지고
당신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당신의 모습은
빛바래 가는 고운 빛깔마냥
제 가슴 속에 아릿한
 편린의 고통만을 더해주고
잊으라, 이제는 잊으라 하시지만,
그렇나 나는 잊지 않으리오
이 모습 또한 당신의 모습일테니
나는 잊지 않으리오
내 당신을 진정 사모했기에

잊혀짐은 잊혀짐으로 잊혀지지
않을것이오
Posted by Peter SEO
2008년 5월 6일 수정
이 글은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더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일시에 수정이 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요즘 한국 TV를 통해서 혹은 인터넷 신문들의, 각종 포털의 메인에서 귀찮을 정도로 접하게 되는 뉴스가 있는데, 그것은 금번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중에 일어난 중국인 유학생(?)들의 개념없는 한국인에 대한 폭력 사태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각 TV 뉴스 앵커들은 무슨 독립 투사나 된듯 비장미가 느껴질 정도로 이 번 사태에 대해서 중국 정부와 중국 대사관의 무개념적 문제 접근 방식과 후속 처리 방식에 대해 성토하면서 어설픈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 뉴스와 각종 포탈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들에 붙는 댓글들을 읽어보면, 폭력을 행사한 중국인들에 대한 악감정 보다는 중국이라는 민족 자체에 대한 언급 내용이 더 많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저급한 의식을 지닌 민족으로 중국인을 묘사를 하거나, 반중국 감정을 고조시켜 욕하는 격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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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단계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 하는 것에 의문 아닌 의문을 가졌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폭력], 인간의 [폭력성]과 [폭력의 정당성]이라는 것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걸 왜 이야기 하는가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세계의 어느나라를 가든지 폭력은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일어날 소지가 있다. 그리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건 못 받은 사람이건 어느 누구도 폭력 행사에 대한 유혹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폭력은 교육의 정도에 따라서 표현이 되는 수위가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없다. 유학생이라는, 지성인이라는 것이 무슨 벼슬이냥 꼬투리 잡아 지성인이, 더 배운 놈들이 그러나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을 보고 픽씩 웃었다.
대학원 교육까지 몇십년 교육 받은 박사, 석사 혹은 선생들은 교육을 너무나 잘 받아서 가정 폭력을 일으키고 경찰서에 끌려가나?
폭력에 대한 컨트롤 능력은 그건 오직 그 개인의 자제력, 즉 개인의 마인트 컨트롤이 어느 정도 잘 되느냐에 달린 것이지 주변의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본다.(예외는 있다.)
군중 심리에 휩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 하지 말라, 그것도 그 개인이 자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다른 변명꺼리가 없다.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잠재 되어져 있기에
나머지 하나는 폭력에 의해서 폭력이 양산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를 바란다 즉, 가정 폭력이 일어난 가정에서 자란 아이(물론 안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건 빈도수에 의한 것이다. 증빙 서류는 지금 없다.)가 폭력을 재 생산할 잠재력이 많다는 사회 기관의 보고서들처럼, 그걸 보고 자라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그렇기에 나는 폭력의 시발점을 그 개인성에 두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이 안되어질 때 힘으로 해결하려는 마인드로 돌아서는 그 싯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태에 노출되어진 커 올라오는 세대들이 잘못된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을 할까봐 그것이 걱정이 된다.
현 싯점에서 내가 "짜이요 !! 쭝꿔"라고 왜치면 맞아 죽겠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물론 이번 사태의 경우는 어떤 사건이 먼저 화두로 거론이 되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진 사건인 만큼, 이미 다른 나라에서 지롤을 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그런지 몰라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쪽으로 회화되어서 거론이 되고 있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것은 티벳의 분리 독립 요구와 맞물린 것 - 그런데, 이번의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티벳의 분리 독립을 지원하는 단체들은 국내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얼마나 실상을 많이 알렸는가 나는 그들이 얼마나 활동을 많이 했는지, 그리고 내 자신도 티벳에 대해서는 사실상 잘 모른다. 예전 영화 티벳에서의 7년과 달라이라마, 이 번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티벳으로 여행을 갈 것이라는 계획과 내가 좋아하는 불교 문화가 있다는 정도.. 그렇기에 여기에서 이 문제는 덮어 두겠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그 것이 아니기에, 티벳 역사를 잘 모르고 있기에)

나는 중국에서도 블로그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고, 가끔 중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중국인라함은 Chinese를 말하는 것이지 Korean-Chinese가 아니다.
그러던 중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당신은 중국의 문화를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나에게 했고(이 질문으로 서로 싸우기 전까지 나는 그를 친절한 사람으로, 낯선 이방인에게도 따뜻함을 보여주는 아주 멋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나라의 문화는 모두 존중 받아야한다는 주의기에 "나는 중국의 문화 및 세계의 다른 나라의 어떤 문화라도 모두 좋아한다. 나의 관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을지라도, 그건 존중받아야 할 그 나라의 고유 정신이기에 존경한다, 특히 중국은 불교와 유교 문화라 아시아권에서 공통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대뜸 "한국은 예로 부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숭상하는 주의가 강한 나라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막판 최종적으로는 "너 같은 쪽발이 보다 더한 국수주의자와는 친구할 맘이 없으니 꺼져라!"라고 하면서 싸운적이 있다.
그리고 이 문제로 내가 내 의견을 중국으로 필력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Korean-Chinese에게 이 문장을 보여주면서 내 의견을 좀 써 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 또한 그 사람의 생각이 맞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 문화가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타인의 문화도 인정을 해줘야한다. 한가지 시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지 말고 다원주의적인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때야만 내 것이 더 화려해진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그 친구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릴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내가 느낀 중국인들은 자기의 것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왜 중화문화라는 말이 생겨겠는가..

우리가 중국인들에 대해서, 중국인라는 나라는 이해할려면 첫번째로 중국(中國)이라는 나라의 이름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먼저 생각하고 이해해야한다.

두번째 그리고 생각을 해야할 것이 있다면 중국은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분명히 말을 하지만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수정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국가다
.

그러면, 나는 이번 사태가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중국의 대처 방식, 죽, 이번 사건에 대해서 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대응을 하는지, 우리는 뻔뻔한 짱깨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중국은 위에 두 가지 생각꺼리대로 뻔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처럼 이처럼 뻔뻔하지 못하고 매번 고개 숙이고 있고, 자국민이 해외에서 사고를 당해도 모루쇠 일관주의니 씨빨 정말 욕 나온다.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마도 그것에 더 많이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른다. 자국민이 자국에서 타국인들에게 개패듯이 맞는 상황이니..

이번 사건에 대해서 분노를 해야하는 것은 폭력을 행사한 시민단체 회원(그들이 어떤 신념으로 그 자리에 나갔는지 모르지만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들과 중국 유학생들을 한국 정부의 사법권에 따라서 엄중 처벌하지 못하고 있음이다. 그 개인이지, 중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화를 내고 있음은 중국이 사과를 하든 안하든 그건 관계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사법권 룰에 맞춰 폭력 행위를 한 자들을 감방에 보내면 끝날 일을, 이렇게 쉬운 일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외교권 마찰 때문에, 그건 변명일 뿐이다. 줏대가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이번 사건과 연관선상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마약운반을 하던 한국인이 사형을 받은적이 있었다. 이 소식은 형이 집행되고 난 후에야 어떻게 한국에 알려졌다. 중국은 자국의 사법권에 따라 그렇게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화를 내야할 일이다. 이번 일은

각설하고, 나는 사람들이 어설픈 민족주의 감정으로 이 사건에 접근을 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미디어의 논평 대부분은 위의 두가지 생각꺼리를 배제한채, 언급도 안하고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깊이 없는 논쟁들이 대부분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런 논쟁꺼리는 모두 어설픈 민족주의에 기대어 자국민의 민족주의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광대짓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다시 한번더 이야기를 하지만, 자국법에 의해서 처벌을 하라, 자국법에 의해서 처벌도 못하면서 무엇을 더 논하고, 사과를 받으려 하나 말이다. 자국법이 해결 못하는 것을 어설픈 민족주의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것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딘가.

그러면 우리는 이 번 사건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생각을해봐야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앞 서두에서 이미 밝혔듯이 "폭력성"이다.

폭력성은 개인의 사회 교육 정도에 따라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닌 개인의 자제력을 얼마나 발휘하고 그것이 순간적으로 개인이 자신을 얼마나 잘 통제하는가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고 여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교육의 혜택을 전혀 못받은 사람이 폭력을 매일 행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모든 선입견은 덜어내고 폭력성 그 자체에 촛점을 두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물론, 사회적인 교육을 통해 특히, 인성 교육을 통해서 그것은 어느정도 커버가 될 수가 있다고 여기지만, 그렇다고 그게 모두 가능한것도 아니고, 특히 우리나라 현 교육 시스템에 사람을 진짜 사람으로 양성하려는 인성 교육 시스템이 있는가?, 이 문제도 우리는 반성해봐야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번 사건을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정당화 될 수가 없음을 좀 말해 줬으면 좋겠다. 중국의 현재의 입장은 그렇지 않은가, '민족주의를 떠나 폭력도 때론 어떤 경우에 따라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은가?,
이것이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 이것을 잘 했다고 옹호하는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이것이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국가의 교육 시스템을 거친 이들에게는 가능한 것이고, 자기들을 세계의 중심국인 중국(中國)으로 부르는 이들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이 부분은 민주주의에서도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의를 위해서 소수는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다수결의 법칙, 어떻게 비틀어 보면 그것도 앞의 시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 이 사건은 사법부가 자국법에 의해서 엄중히 처벌하고, 물론 이 처벌에는 티벳 지지 운동을 한 이들에게도 같이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고 나서 천천히 위의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집단의 이기성에 의해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해관계를 이유로 그것들을 묵인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나는 그것을 이 번 기회를 통해 잡아 줬으면 좋겠다.

중국, 지금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떠들고 지뢀을 하고 해도 나중에는 같이 손잡고 파트너쉽을 유지해야하는 아군인 동시에 경쟁해야하는 적이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의 폭력성에 대해, 어떤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민족을 비하하는 말을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민족으로 묶어버리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다. 선량하고 깨어있는 지식인들까지 말이다.
당신이 평생 한반도에서만 쳐박혀 살고, 평생 한국에서만 빌어먹고 살다가 죽을 것이 아니면 타인의 민족성을 이야기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전에 앞서 이야기한 두 개의 시선으로 중국인을 먼저 바라보고 자기나름대로 정의를 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한국의 민족성, 한국에서나 먹힐 것이지 외국에 나오면 한국의 민족성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국의 민족성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 생각을 하고.. 그리고 외국에서 장사하는 장사치들 중에 자국민을 등쳐 먹는 족속들이 더 많음을.. 생각한다면, 그건 어설프게 냄새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강아지들의 오줌싸기 놀이와 별반 다를께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성에 촛점을 맞추고 모든 매체가 이 사건을 한번 더 다루어준다면, 커 올라오는 세대에게 더 좋은 민주주의 시민 교육이 되지 않을까하고 여겨진다.

PS. 나는 가끔 매번 겁을 먹는다. 거리를 다닐때, 혹시 공안에 불시검문을 당하거나 끌려가면 어쩌지?,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내가 말을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기에 택시를 타고 다니다가도 가끔 공안 차량이 지나 갈 때 움찔한다. 물론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건딜지는 않는다. 내가 범죄자가 아닌 이상, 내가 패스포트나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은 이상. 그렇나 끌려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여기가 바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기에
Posted by Peter SEO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가물가물해진 시간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들.. 때론 가슴 시리도록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 기억의 틈새 사이로 흘러내리는 아련한 핏자국

내 그리워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 있음을 감사하지만, 때론 그 기억들이 아릿한 슬픔의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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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 SEO

너를 그리워하다

불어가는 바람에
꽃잎은
헛날리고,
내게 스몄던
향기도
바람에 빛바래 간다.
떠나가는 바람에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도
소복히 쌓이는
먼지처럼,
내가 머문 시간 속으로
쌓여가기만 하는
지나간
시간의 퇴적들.

그 속에 피어나는
꽃,
한 송이

Posted by Peter SEO
TAG 그리움
거리에서 만나는 이미지들.. 어떤 이미지든간에 아련한 슬픔이 느껴진다.
이미 지나간 우리의 시간 속에 묻혀 있는 추억들 일 것인데,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느데, 왜 내게는 까닭모를 눈물로 다가오는지 알수가 없다.

슬픔이 슬픔을, 깊은 슬픔을 안겨주는 소품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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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 SEO
중국은 땅이 넓은만큼 세계 각국의 브랜들이 다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중국에 대부분 국가 브랜드들의 생산 공장이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한국에서 죽을 써거나 망해서 더이상 한국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도 없는 브랜드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휴대폰의 노키아(난 노키아가 중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높은 줄 몰랐다. 내가 쓰고 있는 것도 노키아다.. 내가 원하는 스탈 걸고 받고 기능에 충실한 삼백원(인민폐)짜리)이며, 그리고 유통에서는 아직 월마트도 건재 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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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 SEO
나는 인터넷 사이트 가입시 내 자신이 정말로 절박하게 필요하고, 내 자신이 계속 즉 죽는 날까지 해당 사이트를 이용할 것이 아니면 주민등록 번호 기입을 강요하는 사이트에는 가입을 하지 않는 편이다.

당신이 인터넷 사이트 가입시 행동 패턴을 생각해 보라
지금은 무엇인가 필요해서 아무 생각없이 주민등록 번호와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회원 가입을 한다. 그리고 그 사이트를 다시 방문하는 횟수가 일년에 몇번이나 되는지를
만약 가지 않는다면 그 사이트를 찾아가서 회원 탈퇴를 하는지도...
대부분의 경우는 일회성의 필요성에 의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그러고 나면 그것을 회수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일 경우다.

나는 국내 포털들의, 사이트 가입시 개인의 주민등록 번호를 요구하는 것은 반대한다.
나는 개인의 정보를 요구하는 사이트는 그 정보를 100프로 지키지 못한다고 믿는 주의고, 우리가 말하는 보안이라는 것은  100프로 안전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주의다. 예전 S 백화점에 근무를 할 때 다른 L 백화점에서 VIP 고객정보를 건당 몇십원에 사서 이용하는 것을 본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다.

당신의 정보, 얼마나 당신은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얼마나 신경써서 당신은 지키고 있다고 여기는가.

개인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관리자의 관리 편리성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무슨 사고가 터지면 그 개인의 신상 정보만 찾아보면 되니까, 불필요하게 아이피 추적을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순전히 느려터진 관리자의 안일한 생각이 그런 재앙을 지금 불러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 다음을 이용하고 있고, 현재 이곳 티 스토리를 이용하고 있지만, 서비스의 질 높은 제공을 위해 내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 곳에서 구현 못하는 것은 찾으면 되므로, 인터넷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 찾지 못할 일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방법을 써서(해킹을 말하는 것 아니다.)라도 찾아 낼 수 있다.

당신의 주민번호 지금 어디까지 가 있는지 한번 확인을 해 보시길.

인터넷 사용에 주민등록 왜 필요한지, 곰곰히 한 번 생각해보시길.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서 100프로 보안은 없다.

: 이 글은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문맥이나 내용이 일부 수정이 될 수 있음을 밝힌다. 
Posted by Peter SEO
1차 수정 : 2008. 4.24 11:00
(문맥이나 주장을 위해 일부 수정이 될 수 있음을 밝힌다.) 

당신은 정말로 박애주의자인가? 무엇이 박애주의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박애주의인가?

아는 분의 블로그 인사차 우연히 들렀다가 아시아 어디 나라에서 어린 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리고 포스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느낀 것은,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그래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참으로 정도 많고, 타인의 슬픔을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참으로 고운 심성을 가졌다.
그렇나 그런 것으로 어설프게 자기자신을 포장하여, 그럴싸하게 자기 자신을 어설픈 박애주의자로 포장을 하려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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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 스토리를 만든다면, 저 어린 아이는 아마도 바구니에 담긴 상품을 부모나 어른들의 강요에 못이겨 거리로 나와 관광객이나 사람들에게 팔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우리는 저 어린 아이가 가엽다고 생각하며, 물건을 하나 팔아 주거나 사진을 찍어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며, 내가 다녀온 저 나라는 말이야 지금  어린 아이를 저런 식으로 학대하고 있다고 말 할 것이다.
우리도 그런 이의 말을 믿고, 저 사진을 보면서 "아니 어린 아이에게, 너무 가엽다, 불쌍하다, 이런 개넘의 부모들"하고 욕하고 난리를 치며 어린아이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후진국의 의식수준을 말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남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그렇게 외친 인권 토론 대상인 저 어린 아이에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저 나라의 인권 실태를 모르던 이들에게 인권 의식을 고취했다는데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 외에는

나는 그래서 "그래서"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나의 행동에 변명의 사족을 단다면 일종의 방관의 시선이다.
우리는 저 어린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저리도록 가여워서 저 어린 아이의 부모를 욕하고, 저 아이가 살고 있는 나라의 풍습을 욕할지 모르지만, 저건 저 나라의 악습이라도 우리가 인정을 해줘야 하는 풍습일 뿐이다.
과거 누군가 우리나라 개고기 문화를 욕했을 때 일부에서는 동물을 잡아 먹는다고(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과 일부 몇몇의 분류들이) 난리 법석을 피웠고, 일부에서는 우리의 풍습에, 우리의 문화에 니가 먼데라는 식으로 악을 쓰며 싸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저 모습이나 그 때의 우리 모습이나 별반 다를 것이 무엇인가?

악법도 법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듯이, 악습이라도 저것은 인정을 해줘야하는 저들의 생활이다.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의 의식 수준에서 저들의 일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저 아이가 불쌍하고 안타까울지 모르지만, 저들의 시각에서 저들의 의식 수준에서는 저 모습이 일상 생활의 풍경일 뿐이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거나, 아니면 삿대질을 하면서 물어 볼지 모른다.
"너는 피눈물도 없냐?"라고
앞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저런 사진을 백날 올리고, 저 아이의 현실에 대해서 백날 토로 해봐야 저 아이에게 생기는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저 모습은 저 아이의 일상 생활이며, 저 아이가 살고 있는 공동체 집단 내의 의식이 일순간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가 백날 떠들어봐야 앞서 개고기 이야기처럼 "쪼까"라는 욕설 밖에 들을 말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인간이기에 저 아이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저 아이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렇나 실질적으로 내가 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저 애가 속해 있는 집단의 의식을 바꾸어 줄 수 있는 방법이 내게는 없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나올지 모르겠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내 마음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당신이 악습이라고 부르는 저들의 풍습과 싸우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면 그냥 조용히 살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모사꾼들이 많아서 입으로는 나불거리면서 자신은 손각락 하나도 까닥하지 않는 인간들이 많다. 당신이나 지금의 나나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중국에서 지내면서 방관의 시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내가 속해 있던 사회의 기준으로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중국을 바라보고 있느라면 비참하다는 생각밖에 안생긴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라는 말이 입에서 나온다.
처음 본 이들의 모습은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80년대 우리나라 수출 자유 공단의 공순이 공돌이들처럼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살면서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아서 한달을 생활하는 공인들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 아팠다. 이른 아침 공장으로 출근하는 얼굴에 솜털이 뽀송뽀송한 어린 계집아이들을 볼때마다 한 두번 울었던 것이 아니다. 그 모습은 20년전 내 고모님의 모습이었기에..
그러는 중에 하나를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이렇게 혼자서 울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저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 내가 저들을 위해서 행동으로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지?, 그런 질문을 수없이 내 자신에게 해보았지만, 대답은 너는 어줍짢은 박애주의자 흉내를 내고 있는 모사꾼이라는 답 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있는 현실이 그들에게는 그냥 받아들여지는 일상이라는 것도 은연 중에 알았다. 그런 후에야 이들의 문화가 보였고, 이들의 생활이 이해가 되기 시작 했다.

이들의 의식이 성장하지 않는 이상, 이들이 생활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장 역사를 보면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도 보이기에 그냥 나만의 슬픔으로 묻어버리고 이들의 문화를 인정해주고, 이들의 문화 속에 나 자신을 흡수 시켜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참으로 정에 약해 쉽게 감동하고, 쉽게 아파고, 쉽게 동정하고.. 그렇나 한가지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당신이 직접 그 현실을, 그 현실에 뛰어들어서 그 문제를 해결할 노력을, 노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들의 문화를 쉽게 이야기 하지말라는 것이다. 과거 우리가 가진 악습들을 우리도 당연시 하며 방어하였고, 아직도 전통의 이름으로 몇몇의 악습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해 되지 않는 기준의 잣대로 보이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당연히 인정해줘야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을 했듯이 그것이 설사 악습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나의 시선에서 모든 현상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이슈로 만들지 말고, 그들의 시선에서 먼저 문제에 접근하는 법도 꼭 가지시길..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정치적인 모사꾼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고 어쭙잖은 박애주의자일 뿐이다라는 것..

말을 앞세우지 말고 제발 행동으로 움직이는 박애주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도 이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나도 그렇지 못한 인종 중에 하나다.

PS. 내가 아는 분 중에 한 분은 고아원에 매년 300 - 400백씩 기부하시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은 한번도 자신의 선행을,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적이 없었다(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럴 사람은 아니다.). 나도 물론 어찌어찌하다가 우연찮게 알게 되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침묵의 선행이다고, 침묵의 행동이다고 생각이 된다. 성경에 나오는 나의 왼손이 한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처럼. 당신이 진정 저 어린아이에게 관심이 있다면, 저 아이에게서 가슴을 후벼파는  무언가를 느꼈다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저 아이의 나라로 가든지, 아니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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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SBS에 있으며, 저작권에 문제가 생길시 연락을 주시면 바로 삭제를 하겠습니다.)

요즘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 목요일 SBS 에서 방영하고 있는 On Air가 바로 그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일단은 연기가 되는,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이 출연을 한다는 것 그것 하나 때문이다.
김하늘의 연기력은 이미 오래전에 믿음을 가졌고(그녀의 연기력에는 물음표를 달지 않는다), 이범수도 그렇고, 송윤아의 연기도 그렇고, 박용하 글쎄(?), 조금은 의문은 달아보지만 그래도 연기력 하나에는 물음표를 달 필요가 없다는데서 이 드라마에 대한 믿음은 간다.
처음 출연진을 보고, SBS 돈 많이 썼네, 미쳤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요즘 이 드라마는 김하늘 대 박용하, 이범수 러브 라인 혹은 송윤아 대 박용하, 이범수의 러브라인이 시청자가 쉽게 예측하지 못하도록 연막을 피우면서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선택이 모라고 해야하나, 약간은 잰다고 해야하나?, 그러면 이 드라마를 이런 애정행각으로 떡칠이 된 드라마로 생각하고 봐야하는가?, 나의 대답은 당연히 노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면 나는 이미 채널을 다른 쪽으로 돌렸을 것이다. 차라리 드라마를 볼 시간에  인터넷 고스톱을 한 판 더 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주의이기 때문에... 그런 찌질이 드라마는 아침드라마나 모 그런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드라마를 자주 본다는 것이 문제다. 취향이 변하고 있다는.. 슬픈일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각 배우들이 맏고 있는 케릭터들의 자기 깨기라고 생각을 하고 보고 있다.
데미안의 계란처럼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자기 성장 드라마라고 비유한다면 딱 맞겠다. 그런 판단 기준을 두고 있기에 '그렇다면 니가 어디까지 깨고 나오는지 보자'는 식으로 가제미 실눈 뜨고 맹렬히 보고 있는 것이다.

김하늘은 독선과 자기 포장으로, 자기만의 거대 성을 짓고 그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송윤아는 당대에 제일 잘 나가는 드라마 시청률 제조기로 내가 쓰는 대본은 시청률 보증수표이고. 그렇기에 드라마 내에서는 내가 곧 법인 드라마 작가, 인간적인 모습의 메니져먼트 회사 사장인 이범수, 순수주의, 휴머니티를, 그리고 나는 적어도 예술을 찍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드라마를 찍고 있는 왕고집, 아니 똥고집의 박용하

이 인물의 자기 깨기, 각 인물의 성격 변화가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준다. 물론 이들이 현재의 모습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 이면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스며있다고 드라마는 간접적으로 쫑알거리며 시청자들에게 말을 해주고 있지만 말이다.
이들이 뭉쳐짐으로 부딪치는 주 요인은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바라본 세상의 시선으로 서로와 부대끼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자기 이탈이라고 해야할까? 그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가는 과정이 러브라인의 복잡 다잡함으로 버물려지는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말이다.

김하늘이 연기는 오승아는 초기에 도도, 왕재수, 밥맛 그 자체의 왕싸가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조금씩 주위를 돌아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팬이 아닌 또다른 시선이 있음을 느끼고, 그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하는지를 조금씩, 매회매회마다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범수가 연기하는 장기준은 근본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현재로서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믿바탕이 휴머니즘으로 정철된 인간성을 지닌 인물이였기에 조금 바뀌었다면, 자신의 여배우에게 끌려 다니다 이제는 끌고 다닌다 정도일까, 이 이외에는 특별하게 변화의 폭은 없다. 그렇나 그가 있었기에 오승아의 변화가 눈에 크게 들어온다.

송윤아가 연기하는 작가 서영은은 어떠한가
물론, 오승아와 별반 다를게 없는 초기의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다. 얼굴이 이뿐 송윤아가 연기를 했기에 용서가 되는 것이었지 만약, 드림하우스 대표가 이 역을 했다면 바로 욕들어 먹기 안성맞춤일 정도로, 그랬던 그녀도 매회매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박용하가 연기하는 이경민, 순수주의 작가주의 PD에서 이범수와는 대조적으로 활발한 스팩트럼을 보여주지만, 엉성한 휴머니티는 우유부단함으로 보여진다. 아직도 변화의 폭은 보이지 않는다. 맬로의 전형적인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해야할까. 또한 이경민이 있었기에 서영은의 변화는 당위성을 지닌다.

송윤아 박용하 VS 김하늘 이범수 혹은 그 반대이거나, 싸움은 다양한 포용력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스팩트럼을 보여줌으로써 때론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분명 말할 수 있는 것은 주위에 대한 포용력의 스팩트럼은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러브라인.. 그것만 보고 있다면, 이 드라마도 별반 다른 드라마와 다를께 없는 각 방송사의 아침 드라마와 마찬가지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할 것 하나 없는. 그럼 이제 드라마를 보는 각도를 살짝 비틀어서 각 인물들에게 그 촛점을 맞추어 보는 것은 어떨지. 그럼 보는 재미가 조금 더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라, 우리는 얼마나 우리 자신을 깨면서 살고 있는지.

PS : 이제 드라마에서 한 때 잘나가던 여배우들이 망가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또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내 생애 마지막 스켄들의 최진실이나 여기에 송윤아(너무나 이쁘게 망가져 줘서 고마워요)처럼.. 얼굴 이뿐 배우가 머 저런 푼수? 그 속에서 우린 또다른 재미를 찾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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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풍경 속의 풍경 2008.04.24 09:22
낙화

한 계절이 오고 가고,
한 계절이
오고 가는 속에
남는,
너의 얼굴

이 계절이 지나면
너는
나의 기억 속에
집을 짓고,
살겠지

다시 또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며

오랜 시간동안
잊혀짐으로
너의 이름은 기억이
되겠지

시나브로,
나는 너를 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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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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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이 오고 가고

한 계절이 오고 가는 속에 남는 너의 얼굴

이 계절이 지나면 너는 나의 기억 속에 집을 짓고 살겠지

다시 또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며

오랜 시간동안 잊혀짐으로 기억이 되겠지

그러다 그러다 나는 너를 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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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시간이 되어 청도 시내 구경을 다녔다. 날씨가 그렇게 청명하지 않아, 청도는 구름이 많이 끼는 그런 날씨가 연일 계속 되고 있다.

이런 날씨가 돌아다니기는 좋기는하지만 햇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우울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청도 시청을 중심으로 하여 5.4 광장을 거쳐서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참 내가 잘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 곳에서는 시청을 시정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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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시청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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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시청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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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카운트 다운중인 시계와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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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시청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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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고 있나보다. 너무 성급함인지 모르겠지만, 계절은 지나가고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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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물론 미사도 간적이 있지만, 이 번에 카메라 장만한 기념으로 다시 담아보려 다녀 왔지만, 역시 카메라 좋아봐야 모에 모다. 아직 카메라에 익숙되지 않아 이미지가 마음먹은 대로 나오지 않았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고딕풍 양식으로 그 보전이 잘되었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의 외관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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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는 돔 형식으로 그 웅장함은 말로 설명하기는 조금 모자라지만,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을 연발케하지만,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묻어나는 것은 무엇때문이지..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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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을 할때마다 보아오던 목련꽃을 오늘 드디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벌써 목련꽃 향기를 맡으며, 꽃길을 걸었을 텐데, 어지간하게 이 곳에서는 목련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느날 아침 출근차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목련 그림자에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든지..

우아하면서도 하얀 목련은 애기들의 순수한 모습이 보인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곳에서 본 목련은 백목련이기는 하지만 약간은 아이보리 색이 많이 가미가 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오리지날 백목련을 본지도 참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를 가는 길에, 봄 나들이 길에 그것도 차장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으로 본 것이 전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한 몇년이 벌써 흘러 갔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 필때면...을 흥얼거리며, 꽃 그림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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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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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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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죄많은 영혼을 위해

이 영혼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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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