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애국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부터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독도는 우리땅... 나에게 있어는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절대 명제인데, 누군가 자꾸 이 명제를 흐리게 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소리는 개소리라 생각하고 귀에 담지 않지만, 정부에서 내 놓는 말은 자꾸 속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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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 SEO
TAG 독도

아래의 글은 어떤 문화적인 징조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이고, 누군가를 씹겠다는 의미보다는 그 분의 역활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위한 것임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어중간하게 문학판에 새로운 이미지 도식을 새기려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다방면으로 해주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쓰는 내 자신에 대한 글쓰기 반성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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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 시대의 아날로그 문학의 시각



 

1. 들어가는 글
2. 게시판 문화의 형성과 진보
3. 실사의 시선과 관념의 시선 사이의 순수
4. ISM인가? 문화 현상으로의 자기 복제인가?
5. 맺음말


4. ISM인가? 문화 현상으로의 자기 복제인가?

디카시는 장르로서 자신의 독보적인 영역성을 가진 ISM인가? 아니면, 그냥 일반 대중들의 자기 언어 유희적인 놀이에 의한 자기 복제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고 본다. 디카시라는 장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ISM이 될 수도 있고, 일반 대중의 언어 유희에 의한 해프닝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여기에서 작자의 생각은 디카시가 자기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수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많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중들의 언어 유희에 의한 카니발 정도로 생각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사이버 문학이니 모니 하면서 더이상 문학판에서 자신의 영역성을 넓히거나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 어중이 떠중이들이 연구랍시고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 인상을 이 디카시를 통해서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인터넷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고, 한국에서 모뎀을 쓰다 광을 쓰고 하다보니 지식을 가지고 인터넷 역사 자체에는 관심이 없이 대중들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방식의 이해 지식을 가지고 밀어 붙인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는 이것은 대중에 의한 진보가 아닌 일부 펜대를 굴리는 작자들에 의한 진보 형태를 띄기 때문에 이것을 ISM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디카시가 ISM으로 자리 매김이 힘든 것이 선행 해결해야하는 다른 장르들에 대한 정의성이 그 문제다. 디카 소설, 디카 대하소설, 디카 수필 등 뮤지션들이 음악을 작곡하여 배경으로 깔고 시를 쓴다면 뮤직 시, 내지 백그라운드 뮤직 시 이런 이름을 붙일 것인가?,
이미 약간은 우습게 들리는 디카 소설이나 디카 수필, 뮤직 시등의 작품들은 오래전 부터 흘러 나왔다. 디카시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왜 다른 장르는 재껴두고 시라는 장르를 가지고 작업을 할까 생각하면 날로 먹기 제일 좋은 장르가 시라는 장르이기 떄문이다.
일단은 사진이나 시나 감수성이라는데 공통적인 코드를 지니고, 문장의 길이도 사진과 배치하면 A4 한장이면 끝나지 않는가. ISM이 생길 때는 하나의 어떤 장르에서만 국한되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문학판이라면 전 장르에 걸쳐 모두 고르게 발전하는 형세이지만, 디카시는 시 장르 하나에만 국한 되어져 있다.

그리고, 디카시를 문학의 이즘으로 인정해 준다면, 기존의 아날로그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스캔을 하여 업데이트 하고 그 것에 이런저런 느낌을 적는다면 모양세는 분명 디카시의 최종 출력물과 그 형식이 같게 될 수 있지만, 그 태생은 전혀 틀리다. 전자는 순수한 디지탈이즘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후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탈의 합성 상품인 모양세가 된다.
이것도 디카시?, 분명 디카시는 아니지만, 디카시가 맞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나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영역성 확보에 실패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미 앞전에서도 밝혔다시피 디카라는 시선은 시선의 순수성이 이미 배제된 사물 바라보기를 통한 이차 편집품이기 때문에 문학 그 자체의 순수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무리수가 있다.(물론 순수 문학을 떠나 포스터모던이나 다원주의 이론으로 설명을 하면 지금의 나의 논지는 공격을 받을 충분한 어거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문학은 인간의 시선으로 느낀 형상을 가슴 속에 인화하거나, 이미 내 가슴 속에 인화되어져 있는 사진들을 하나 둘 꺼내 보면서 마음이 가는대로 글을 이끌어내는 형태였다.(이 논리 또한 앞의 근거로 공격 받을 문제성은 있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이나 에코의 여러 소설들을 가지고 문제 삼는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디카시는 가슴이 만들어낸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눈과 머리, 더 자세히 말한다면 디지털화된 시선(이건 왜곡적인 시선이지만)이 잡아 낸 풍경을 보면서 내 가슴이 따라가는 모양세이다. 어떻게 이런 가공화 된 상품을 보고 문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말인가. 쓰는 매체는 디지탈이든지 아날로그이든지 상관이 없다. 쓰는 것 자체를 가지고 이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렇나 내 심상을 움직이기 위해 바라보는 최초의 시각에는 문제가 있는 거짓의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학의 순수성에 비추어 이것은 이즘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디카시 매니아라 일컫는 이들이 펴는 이론 중에 타인의 사진 작품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억지인가. 시라는 문학이라는 장르로 디카시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그 자체가 이미 왜곡 되어진 사물의 감정을 받아 들인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내가 타인의 작품을 보고 심상이 따라 움직여 글을 배출해 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작품으로 인정을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꼭 문학판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은 분명 모방과 창작의 논리를 따지지만, 현대의 문학은 제 3차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위해 모방을 하는 것은 인정하는 주의다. 그것이 포스턴 모던과 다원주의 이론이 확산이 되면서 모방 이론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세분화를 통한 정의가 아니었든가.(표절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바로)
도용은 분명 문제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허락을 받은 창작물에 대해서 3차 가공을 위해 사용을 한다면 그것을 인정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디카시 매니아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자신이 부정하는 꼴을 보인다.

이런저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어떤 정의도 없이 그것을 이즘화 시켜 부르고, 창작물에 이름을 짓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이런 작업을 해 왔던 이들에 대한 결례이자 심한 불쾌감을 주는 행위다. 어디에서 부터 왔는지 그 시조조차 모르면서 이즘화 시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대중이 만족할 만한 시는 뽑아 낼지 몰라도. 사진은 뽑아 내지 못할 것이다. 한장의 사진에서 영혼의 울림을 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하는 짓이다. 사진 작가들에게 결례가 되는, 무례한 짓을 하지는 마라. 디카로 무조건 찍어 댄다고 그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런 이유로 디카시는 이즘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 80년대 후반 도시시, 신서정시, 연예시라고 나블거리던 인종들처럼(나도 그들의 한 매니아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반성이 된다.) 대중의 언어 유희에 의한 다양한 표현 방법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약 꼭 이즘으로 만들고 싶다면, 당신이 대한민국 문학판에 꼭 석학이라는 이름자를 새기고 싶다면, 80년대 후반 쏟아져 나온 잡다한 시 장르들이 왜 사멸을 했는지 되짚어 보라, 그러면 오류는 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이 만들어낸, 순수 아마추어들이 만들어낸 것을 보고 자기들도 따라해 보면서 이 것 또한 모가 되겠네 하고 이름 짓고 이것이다. 내가 선구자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마라는 것이다.
디카시든 모든, 이것은 일반 대중들이 이끌어낸 것이지 당신네들이 이끌어낸 산물이 아니다. 보라 당신네들 조차 훔치기를 통한 창작을 했으면서 타인의 작품을 통한 창작은 인정 안한다는게 말의 앞뒤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디카시는 이즘이 아니다. 순수한 문학도 아니다. 단지 대중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언어 유희의 또다른 표출 방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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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기에 그리워 한다.

그립기에 그리워 한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내리는
비에
나의 시간은 젖어든다.

어디 처마밑에서
이 비를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마는
이마저 여의치 않아
이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비에 젖어 잠이 든다.

그리움은 나를 이렇게
잠식한다.

그립기에 그리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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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哀歌

別離 2

풍경 속의 풍경 2008.08.26 10:05
別離 2

넌 이제
아득히,
아득한 먼 곳으로
떠나는구나.

무심히,
무심할 정도로,
나와 잡았던
손을 놓은채,
카론의
손을 잡고서

윤회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만날 수 있을꺼라는
아득한
그리움의 약속만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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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득히,
아득한 먼 곳으로 떠나는구나

카론의 손을 잡고
나와 잡고 있던 손을 놓은채

윤회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날 수 있을꺼라는
아득한 그리움의
약속만을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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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別離, 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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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주일에 청도 시내를 나갔다가 왔다. 올림픽 경기 중에 일부가 이 곳에서 열리고 있기에 그것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 인간들이 경기장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올림픽 관련 기념품이라도 하나 건져야지 하는 생각에.. 그런데 가는 장날이라고 누가 했던가 지롤 맞을 비가 내렸다.

요투 경기가 열리고 있는듯은 했는데, 들어가는 입구를 잘못 짚었는지(혼자서 갔기 때문에 길을 막고 들어가는 것을 제재하는 경찰관에게 왜 못들어가냐고 물어도 보지 못하고 되돌아 서야 했다.), 그냥 되돌아 와야 했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내가 들어간 입구가 아마도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프레스 센타나 아마 그쪽으로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했다.(역쉬 나는 길눈이 어두워)

이번주에 다시 한번 더 가봐야할 듯 하다. 마지막이나마 올림픽 기분이라도 느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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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코 백화점(할인점 개념) 앞에 있는 차이나 뱅크는 베이징 2008이라는 현수막으로 전면부를 모두 치장을 했다. 다소 이런 것들 때문에 이 곳에서도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있구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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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장 가는 길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해변이 나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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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인간을 남에게 소개할 때 - 사람들은 그런다. 접대성 멘트로, 인물 좋고, 음성이 조용조용하네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나는 늘 그렇게 이야기 한다. 잘못 보신거예요, 성깔 더럽고, 입은 얼마나 걸레 같다고요..

이 블로그 내에 있는 "이판사판공사판"이라는 공간이 이런 내가 욕을 하고픈 욕구를 풀기 위해서 내 자신이 해우소처럼 만든 공간이다.

그렇나 내가 욕을 할 때 내가 욕을 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내 글에 누군가 옹호를 한다고 해서 그 것을 등에 엎고 기세 당당하게 더 욕을 하고는 있지 않은지는 항상 되돌아 보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도 그랬고, 요즘 욕을 하는 어떤 글들을 읽어 볼때, 다수 속에 포함된 그렇지 않은 소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도매로 싸잡아 욕을 하는 경향이 대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글에 대해 옹호하는 이들이 있다하여 자신의 글에 대해서 되돌아 봄 없이 그대로 기세등등하게 버티는 이들을 볼 때 "당신도 나중에 그렇게 싸잡아서 욕을 먹어봐라"라는 악감정조차 들 정도이다.

욕이나 비판이나 이런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비판이나 욕을 하고, 자신의 주장을 이해 받으려면 자신이 현재 칼질을 하는 그 대상 속에 들어 있는 그렇지 않는 소수에 대한 예의도 함께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판단력이 유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시선으로 그들을 보지 말아야한다는 것, 내 시선이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 시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편협되게 살아가다 그런 인간들은 언젠가 한번 그 댓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다수 속에 들어 있는 소수에게도" 아닌가.

당신의 욕 한마디에 피멍드는 소수를 늘 생각하고 칼질을 하시기 바란다.

나도 물론 그렇게 해야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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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비판, , 욕설

哀歌 # 22
        - 니가 그리운 날에는 Part 2

니가 그리운 날에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무작정 운다.

니가 그리운 날에는
따뜻했던 기억보단,
후회스런,
뼈저린 후회의 기억들만
떠오른다.
너에게 잘해준 기억보다,
네게 못해준 기억만 떠오른다.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던뎅,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고 이야기 하던데
너에 대한,
너라는 단어 속에 담긴
추억의 낱말들은
왜 이렇게도
나를 슬프게
만드는지.

니가 그리운 날에는
무작정 목놓아 운다.
나조차 추수리기 힘든
감정에 휩싸여,
물밀듯 밀려오는
슬픔 속에 나를 내 버린다.
발버둥치면 칠 수록
더더욱 아프고
뻐저리게 후회스러우니

이제라도
부디,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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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歌 # 21
      -니가 그리운 날에는

니가 그리운 날에는
안개 자욱하던
그 강뚝을
나홀로 거닌다.

한참을 그렇게
모든 것을
흘러가는 시간 위에
놓아 두고,
흘러가던 안개따라
흘러가던 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이 안개가 거치면
나는,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내 가슴 속에
자욱한 눈물로 남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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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리운 날에는
안개 자욱하던
그 강뚝을
나홀로 거닌다.

한참을 그렇게
모든 것을
흘러가는 시간 위에
놓아 두고,
흘러가던 안개따라
흘러가던 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이 안개가 거치면
나는,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내 가슴 속에
자욱한 눈물로 남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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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언제나 징검다리는 놓여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행복한 미래만이 내 앞에 펼치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Posted by Peter SEO
TAG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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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로 갈까?
부처의 발길을 따라서 티벳으로 갈까?, 아니면 그냥 하이얀 눈이 날리는 훗가이도로 갈까?, 아니면 돈을 더 모아서 수많은 고행자들의 땀으로 젖어 있는 야곱의 길로 가 볼까?

이런 저런 부유한 상상을 하면서 잠시 고민을 해 보지만,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내가 하던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이 일을 떠나지 않고서는 내가 쉴 곳은 내가 일하는 바로 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여행의 자유로움..

그리고 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순례길을 떠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물론 지금 내가 서 있는,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 삶의 순례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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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든다.

니 말도 옳고, 내 말도 옳고, 모든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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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부처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는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청도에서는 요트 경기가 열리고 있지만,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나라에서 정말로 올림픽이 열리고 있나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청도 외곽, 비행장이 있는 곳이라 요트 경기가 열리는 곳이랑은 지리적인 거리가 분명히 있다. 그렇나 이 곳의 주민들을 봐도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때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멀랄까 조용하다고 해야 하나.. 거리에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엠블램 외에는 그렇게 올림픽이 열리는구나하고  실감하기가 어렵다.(사실 이 곳은 공장 지대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접어두고, 인터넷을 통해서 올림픽 기사를 보다가 개막식 불꽃 놀이에 CG가 사용이 되었다는 것과, 어린아이가 립싱크를 했다고 해서 그게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 사기니 모니 하는 글들의 공방전을 접하게 되었다.

내 견해에서는 그건 사기가 아니라고 본다. 어차피 올림픽은 축제이고, 이벤트이다. 우리는 그러한 화려한 볼꺼리를 보기 위해서, 기대하면서 TV 앞에서 죽치고 있었거나, 아니면 개막식장을 찾았을 것이다.

위의 두 문제가 덮혀져 있다가 외국 언론이나 모 그런 것에서 먼저 까발려 이슈화가 되고, 중국이 끝끝내 그것에 대해서 오리발을 내밀다가 결정적인 증거에 의해서 한방 먹었을 때는 사기가 성립이 될지 모르지만, 발본색출이 된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담당자들에 의해서 그것이 어찌어찌 되었다라고 밝혀졌다는 것에 있고, 그것을 중국의 자국 언론이 보도를 했다는 데에 있다. 쪽팔리는 문제인데 아무리 그래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기간에 저런 기사를 낼까?-사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잘못을 해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지 아는지 모르지만, 인정을 안하는 주의기는 하다.

올림픽은 분명 감동과 센세이션할 무엇인가를 개막식을 통해서 여태 제공을 해 주었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가 중국 영화를 볼 때 이미 보아 왔던 와이어 기술과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충분한 감동을 줬다고 여긴다.

그랬다면 그것으로  "개막식 CG & 립 싱크" 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를 할 필요도 없다. 올림픽은 축제이자 이벤트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사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한 그들의 공을 오히려 칭찬해줘야 하지 않을까?,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한..
우리가 만약 욕을 해야한다면, 중국인 자체가 아니라(중국인 자체도 속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테니까), 연출 총 감독을 맡은 장이모우나 음악 감독을 오히려 욕해야지.. 그가 희대의 사기꾼이라면 사기꾼일테니까..

각주 ---
문맥의 정확성을 위해서         색으로 입혀진 부분은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었기에 부분 수정이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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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이 아마도 국가 소유의 공기업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뉴스나 모로 통해 여러 차례 들었고(그럴때 마다 입으로는 씨팔 짤릴 일 없는 것들이 해 처먹기는 더 많이 해 처먹어요 하는 욕이 나왔고), 철도공사의 서비스 개판에 대해서는 진저리 느낄 정도로 짜증이 나 있었는데, 어떻게 씹어 볼까 고민하고(한국에 없는 관계로 씹을 기회가 사실은 없었다.) 있었는데 드뎌 꼬투리를 하나 잡았다.

서울역에 붙어 있는 모 현수막을 보면 공기업 서비스 몇년 연속 1위였던가 하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공기업 대상인지 다른 것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실천하고 모하는 경영 이념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쪽 팔리는 것은 대문 문패에 불 나간 것도 모르는 시설물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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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입점해 있는 갤러리아의 네온 간판이 더 아름답게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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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물을 이따위로 관리해서 어떻게 몇년 연속 서비스 1위를 하는지 궁금하다.(시설물 관리는 채점 대상에 안들어가나?) 서울역은 우리나라 철도의 대문이다. 인천공항이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듯.

외국인들이 이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공기업 방만 경영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장은 책상에 앉아 펜대나 굴리고, 적자로 허덕이면서 보너스는 다 챙겨가고, 그래서 공기업 노조는 입장을 이해해 주고 동참해 주려 해도 입에서 "쪼까"라는 말이 나온다.

챙겨 가는 만큼 니네 터전이나 좀 잘 좀 관리해라. 고객들 서비스 걷어갈 생각 말고..
Posted by Pete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