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國行魂

훠~~이, 훠~~이
바람이 되거라, 구름이 되거라,
한세상 얽메이지말고 자유롭게 살다가는
영혼이 되거라

워~~이, 훠~~이
윤회의 수레를 타고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 애미의 품 속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말거라
모질고 모진 삶의 가난 속으로,
이 애미의 가난한 품 속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훠~~이, 훠~~이
젖꼭지를 네게 물리고도 
언제나 네 주린 배의 허기를 덜어주지 못했던
이 애미의 품 속으로는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차라리
새가 되고, 나비가 되고, 물이 되어
이 세상 한 세상
멈춤없이 살다가 가거라
그렇게,
살다 가거라

워~~이, 훠~~이
죽음보다 못했던
이 삶을
이제는 잊거라
잊거라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인연 모두 잊고
그렇게 가거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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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가슴에 홍등을 켜다.
                   - 슬픈 스토커

소리를 밟으며,
그대의 그림자를 쫓는
발걸음이 보인다.

영혼조차 시들어버릴
그대를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이,
느껴진다.

바람 소리에 묻혀
흩어져 가는
가늘은 소리가 흘러 나오는
떨리는 입술이 보인다.

그대의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차가운 손길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그대의 발자국 소리를 쫓는
두 귀

이제
어둠 속에서
그대,
두려워하지 마시라
홍등을 켜
그대 가슴에 걸어 두옵니다.

그대 가슴에 홍등을 걸어두고
돌아 옵니다.
Posted by Peter SEO
TAG 哀歌, 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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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풍경 속의 풍경 2009.02.05 09:56
기다림

기다림의 시간이
이렇게 슬픈줄
몰랐습니다. 
그대를 남겨두고 홀로
떠나갈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이 기다림이 끝나면, 
그대와 난,
이별이라는 단어를 
서로의 가슴에 새기겠지요
눈물에 얼룰진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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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차나 한 잔 하시게나 III

들창으로 지나가는
찰나 바람 소리에도
흘러내리는
눈물,
이제 그 열려진 창을
닫게나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니

여보게,
이리와서
차나 한 잔 하시게나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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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풍경 속의 풍경 2009.01.19 18:22
독백

기억이 나지 않아,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책장처럼,
희미해져 가는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어보려
강가에 나서면
수면 위에 포진한 자욱한 안개의 군단이
어느틈엔가 나를 에워싸고,
기억하려 했던
시간과 공간과 이름들
모두 그들의 등뒤로 감춰버려.

기억이 나지 않아,
함께 했던 시간과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혼자됨의 시간과
홀로 걸어가야할
길 위에서의 시간과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할 그대가

기억이 나지 않아
이제 이것이 당신과 나 사이의
마지막 연의 끝인가 봐.
잡고 있던 당신의 손을
이제,
놓아야 할때인가 봐.
더이상 그려지지 않는 당신의
얼굴처럼
바람결에 꽃잎이 헛날리듯

이제는,
잊어야하는 건가봐
Posted by Peter SEO
TAG 別離, 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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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대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입니다.
세월이 지나
한잎,
두잎
꽃잎이 떨어져
비록 그 몰골이
초라해져 갈지라도
그대는 제게
언제나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일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지난
먼 훗날
나와 함께
노을진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한송이 꽃일테니까요
Posted by Peter SEO
TAG 愛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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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평화를

그대에게 평화를..
그대의 얼어 붙은 심장에도
그대의 메말라 버린 눈물에도 
모욕스런 단어로 젖은 그대의 입에도
평화를..

그대에게 평화를..
부끄러운 그대의 두 손에도
평화를..
그대의 두 발에도 평화를.. 

그대에게 평화를..
절망의 빛만 받아들이는 그대의
두 눈에도 평화를..
저주스런 말들만 받아들이는
그대의 두 귀에도 평화를..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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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는 길

나는 오늘도 
스쳐지나가는 파도에 휩쓸려
언제,
허물어져 내릴지 모르는 
모래집을 짓습니다.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는
후덜거리는 두 다리를 이끌고,  
오늘도 나는
이 길을 가고
또가고 있습니다.

언제 허물어 내릴지 모르는 
모래성을 쌓고,
또 쌓고
이 길이 나를 지치고,
지치게 하더라도
이 길을 가는 이유는
이 길의 끝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섰는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는 걷습니다.
그래서,
Posted by Peter SEO
TAG 그대,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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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그대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나는
달이 뜨면 피었다가 달이 지면 지는
달맞이 꽃이라도
그대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그대의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나는
창틀에 핀 이름모를 꽃이라도
그대를 바라볼 수 있고,
우연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대의 눈길을 느낄 수만 있어도 좋으니
그대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그대의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나는
그대가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밤이면,
그대의 가슴에 나의 향기로
그대의 그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만 있어도
행복한,
그대는 비록 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질언정
그대의 창가에 핀
한 송이 꽃이고 싶다.

그대는 나에게 행복이기에
내 가슴 속에 핀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니까.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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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리 #

풍경 속의 풍경 2008.10.14 21:14
별리 #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억새밭에 헛날리는 하얀 눈송이처럼
우리의 언어도,
바람결에 잊혀져 갈터이니

당신을 기다리겠노라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어깨에 지인
개나리 봇짐보다,
더 무겁게 당신의 가슴을
짖누를터이니

당신을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매정한 사람이라,
매몰찬 인사라
목청놓아 대성통곡할터이니

옷고름 잘근 물어 씹으며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따습한 밥 한 그릇
지어 올리며,
박복한 인생이라
토해 냈건만,
어이 어이여,
어이 어이 어이요.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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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어떤 문화적인 징조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이고, 누군가를 씹겠다는 의미보다는 그 분의 역활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위한 것임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어중간하게 문학판에 새로운 이미지 도식을 새기려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다방면으로 해주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쓰는 내 자신에 대한 글쓰기 반성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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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 시대의 아날로그 문학의 시각



 

1. 들어가는 글
2. 게시판 문화의 형성과 진보
3. 실사의 시선과 관념의 시선 사이의 순수
4. ISM인가? 문화 현상으로의 자기 복제인가?
5. 맺음말


4. ISM인가? 문화 현상으로의 자기 복제인가?

디카시는 장르로서 자신의 독보적인 영역성을 가진 ISM인가? 아니면, 그냥 일반 대중들의 자기 언어 유희적인 놀이에 의한 자기 복제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고 본다. 디카시라는 장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ISM이 될 수도 있고, 일반 대중의 언어 유희에 의한 해프닝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다. 여기에서 작자의 생각은 디카시가 자기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수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많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중들의 언어 유희에 의한 카니발 정도로 생각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사이버 문학이니 모니 하면서 더이상 문학판에서 자신의 영역성을 넓히거나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 어중이 떠중이들이 연구랍시고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 인상을 이 디카시를 통해서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인터넷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고, 한국에서 모뎀을 쓰다 광을 쓰고 하다보니 지식을 가지고 인터넷 역사 자체에는 관심이 없이 대중들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방식의 이해 지식을 가지고 밀어 붙인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는 이것은 대중에 의한 진보가 아닌 일부 펜대를 굴리는 작자들에 의한 진보 형태를 띄기 때문에 이것을 ISM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디카시가 ISM으로 자리 매김이 힘든 것이 선행 해결해야하는 다른 장르들에 대한 정의성이 그 문제다. 디카 소설, 디카 대하소설, 디카 수필 등 뮤지션들이 음악을 작곡하여 배경으로 깔고 시를 쓴다면 뮤직 시, 내지 백그라운드 뮤직 시 이런 이름을 붙일 것인가?,
이미 약간은 우습게 들리는 디카 소설이나 디카 수필, 뮤직 시등의 작품들은 오래전 부터 흘러 나왔다. 디카시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왜 다른 장르는 재껴두고 시라는 장르를 가지고 작업을 할까 생각하면 날로 먹기 제일 좋은 장르가 시라는 장르이기 떄문이다.
일단은 사진이나 시나 감수성이라는데 공통적인 코드를 지니고, 문장의 길이도 사진과 배치하면 A4 한장이면 끝나지 않는가. ISM이 생길 때는 하나의 어떤 장르에서만 국한되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문학판이라면 전 장르에 걸쳐 모두 고르게 발전하는 형세이지만, 디카시는 시 장르 하나에만 국한 되어져 있다.

그리고, 디카시를 문학의 이즘으로 인정해 준다면, 기존의 아날로그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스캔을 하여 업데이트 하고 그 것에 이런저런 느낌을 적는다면 모양세는 분명 디카시의 최종 출력물과 그 형식이 같게 될 수 있지만, 그 태생은 전혀 틀리다. 전자는 순수한 디지탈이즘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후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탈의 합성 상품인 모양세가 된다.
이것도 디카시?, 분명 디카시는 아니지만, 디카시가 맞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나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영역성 확보에 실패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미 앞전에서도 밝혔다시피 디카라는 시선은 시선의 순수성이 이미 배제된 사물 바라보기를 통한 이차 편집품이기 때문에 문학 그 자체의 순수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무리수가 있다.(물론 순수 문학을 떠나 포스터모던이나 다원주의 이론으로 설명을 하면 지금의 나의 논지는 공격을 받을 충분한 어거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문학은 인간의 시선으로 느낀 형상을 가슴 속에 인화하거나, 이미 내 가슴 속에 인화되어져 있는 사진들을 하나 둘 꺼내 보면서 마음이 가는대로 글을 이끌어내는 형태였다.(이 논리 또한 앞의 근거로 공격 받을 문제성은 있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이나 에코의 여러 소설들을 가지고 문제 삼는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디카시는 가슴이 만들어낸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눈과 머리, 더 자세히 말한다면 디지털화된 시선(이건 왜곡적인 시선이지만)이 잡아 낸 풍경을 보면서 내 가슴이 따라가는 모양세이다. 어떻게 이런 가공화 된 상품을 보고 문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말인가. 쓰는 매체는 디지탈이든지 아날로그이든지 상관이 없다. 쓰는 것 자체를 가지고 이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렇나 내 심상을 움직이기 위해 바라보는 최초의 시각에는 문제가 있는 거짓의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문학의 순수성에 비추어 이것은 이즘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디카시 매니아라 일컫는 이들이 펴는 이론 중에 타인의 사진 작품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억지인가. 시라는 문학이라는 장르로 디카시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그 자체가 이미 왜곡 되어진 사물의 감정을 받아 들인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내가 타인의 작품을 보고 심상이 따라 움직여 글을 배출해 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작품으로 인정을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꼭 문학판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은 분명 모방과 창작의 논리를 따지지만, 현대의 문학은 제 3차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위해 모방을 하는 것은 인정하는 주의다. 그것이 포스턴 모던과 다원주의 이론이 확산이 되면서 모방 이론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세분화를 통한 정의가 아니었든가.(표절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바로)
도용은 분명 문제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허락을 받은 창작물에 대해서 3차 가공을 위해 사용을 한다면 그것을 인정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디카시 매니아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자신이 부정하는 꼴을 보인다.

이런저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어떤 정의도 없이 그것을 이즘화 시켜 부르고, 창작물에 이름을 짓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이런 작업을 해 왔던 이들에 대한 결례이자 심한 불쾌감을 주는 행위다. 어디에서 부터 왔는지 그 시조조차 모르면서 이즘화 시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대중이 만족할 만한 시는 뽑아 낼지 몰라도. 사진은 뽑아 내지 못할 것이다. 한장의 사진에서 영혼의 울림을 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하는 짓이다. 사진 작가들에게 결례가 되는, 무례한 짓을 하지는 마라. 디카로 무조건 찍어 댄다고 그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런 이유로 디카시는 이즘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 80년대 후반 도시시, 신서정시, 연예시라고 나블거리던 인종들처럼(나도 그들의 한 매니아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반성이 된다.) 대중의 언어 유희에 의한 다양한 표현 방법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약 꼭 이즘으로 만들고 싶다면, 당신이 대한민국 문학판에 꼭 석학이라는 이름자를 새기고 싶다면, 80년대 후반 쏟아져 나온 잡다한 시 장르들이 왜 사멸을 했는지 되짚어 보라, 그러면 오류는 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이 만들어낸, 순수 아마추어들이 만들어낸 것을 보고 자기들도 따라해 보면서 이 것 또한 모가 되겠네 하고 이름 짓고 이것이다. 내가 선구자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마라는 것이다.
디카시든 모든, 이것은 일반 대중들이 이끌어낸 것이지 당신네들이 이끌어낸 산물이 아니다. 보라 당신네들 조차 훔치기를 통한 창작을 했으면서 타인의 작품을 통한 창작은 인정 안한다는게 말의 앞뒤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디카시는 이즘이 아니다. 순수한 문학도 아니다. 단지 대중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언어 유희의 또다른 표출 방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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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기에 그리워 한다.

그립기에 그리워 한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내리는
비에
나의 시간은 젖어든다.

어디 처마밑에서
이 비를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마는
이마저 여의치 않아
이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비에 젖어 잠이 든다.

그리움은 나를 이렇게
잠식한다.

그립기에 그리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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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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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離 2

풍경 속의 풍경 2008.08.26 10:05
別離 2

넌 이제
아득히,
아득한 먼 곳으로
떠나는구나.

무심히,
무심할 정도로,
나와 잡았던
손을 놓은채,
카론의
손을 잡고서

윤회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만날 수 있을꺼라는
아득한
그리움의 약속만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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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야 3
        - 無言, 無聽, 無尋

Part I


애기 보살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그 손을 내려
나를 좀
쳐다 봐 주소.
먼 길을 돌아, 먼 시간을 돌아온
이 아낙을 좀
봐 주소.
엉어리로 남았던 시간은
시나브르
퇴색해가고 있으니.

애기 보살님아!
제 말이 들리는지요,
제 울부짖는 말 소리가 들리거랑,
그 손을 내려
이 아낙을 좀 쳐다봐 주소,
오랜 시간 사무치게 듣고 싶었던
"엄마"
나즈막히 불러 주면 안되겠소.

보살님의 생명의 모태인,
모진 시간의 고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보살님께서 생명의 싹을 틔우셨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화석이 되어 남았는
자궁을 기억하신다면,
이 보잘 것 없는 아낙에게
"엄마"라고 불러 주시면
안되겠소.

Part II

보살님,
울고 계신 보살님
저에겐,
아무런 기억이 없답니다.
제 두발이 딛고 있는 작금의 이 시간만이,
제가 걸어가야할
경내의 수 많은 저 계단들이
의미가 되어줄 뿐,
제겐 의미가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답니다.
파르라니 갂은 스님들의 저 느리디 느린
발걸음만이
제게 의미가 되고 삶이 될 뿐입니다.

제겐 제가,
태초의 어디에서 왔건,
제 태반을 잘라 묻은 이가
누구인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버리지 않았어도,
내가 버리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나를 버린 시간은
존재를 하니,
속세의 삶은 불어가는 한 줄기 바람일뿐,
과거의 시간이 버려짐과 동시에
저 자신도 함께 버려 졌으니까요

보살님,
제 앞에서 울고 계신 보살님 !
이제,
그 발걸음을 돌리십시오.
제겐 어미가 없습니다.
제 가슴 속엔
열반으로 드시던 주지 스님께서 피우셨던
화사한 미소만 있을 뿐이니,
보살님,
이제 돌아가십시오.
속세,
보살님과 저와의 연은
여기까지니,
오랜 시간 전에 우리의 연은 이미 다했으니,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지난 후
그 때..
또다시 어미와 자식으로 환생의
..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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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립다.

오늘 같이 비 내리는 날이면
니가 그립다.
너는 아직도
내 맘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그런 너를 보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창에 맺히는 빗방울처럼
내 가슴에 맺히는
이 눈물들
언제 다 씻을 수 있을런지
내 맘 속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웃고 있을
니가 있는데도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는
내가
밉다.
Posted by Pete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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