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어떤 문화적인 징조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이고, 누군가를 씹겠다는 의미보다는 그 분의 역활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위한 것임을 알아 주시기 바라며, 어중간하게 문학판에 새로운 이미지 도식을 새기려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다방면으로 해주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쓰는 내 자신에 대한 글쓰기 반성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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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 시대의 아날로그 문학의 시각



 

1. 들어가는 글
2. 게시판 문화의 형성과 진보
3. 실사의 시선과 관념의 시선
4. ISM인가 문화 현상으로의 자기 복제인가
5. 맺음말



2. 게시판 문화의 형성과 진보

인터넷 문화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피가 제일 큰 서비스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게시판 서비스일 것이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거나 이미지로 표현을 할 수 있으니, 그리고 실시간은 아니더라도 쌍방형 의사 전달이 가능하니까, 이 게시판이 없다면 인터넷의 재미 또한 반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리플다는 재미가 있다.

그럼 국내에서는 이 게시판 문화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고, 진보의 단계를 가졌을까
게시판 문화의 진보 형태를 보기 위해서는 웹의 진화 형태를 보면 자연스레 답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게시판 문화는 웹이라는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에 불과하기에 그것을 따로 떼어 내어 판단하기는 힘들기 때문이고, 독자적인 영역성의 확보 면에서도 설명이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웹은 그럼 어떻게 진화를 했는가?, 웹의 진화 모습을 살펴보면 지역군에 따라 그 특색이 잘 드러난다.
초기 웹사이트들이 가지고 있던 특색을 가지고 구분 지으면 미주군, 유럽군, 일본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나누는 특징적 요소는 구성된 웹사이트의 이미지성과 텍스트성, 색감에 의해 나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 싯점은 1992년경이다.
웹을 구현하는데 중점으로 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즉, 비쥬얼성과 가독성에 중점을 둔 요소이다.

텍스트를 위주로 웹 사이트를 주로  제작을 하던 곳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군과 유럽의 변방 국가들이었다.
이들의 초기 웹사이트 모양새를 살펴보면, 쌍방형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일방적인 자기 정보 노출쪽에 가까운 텍스트 위주의 웹을 구사 하였다. 질문이나 대화는 이메일을 받는 형식으로..
초기 야후의 모습이 그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초기 야후를 보면(지금은 구글에서 초창기의 의도를 엿볼 수 있지만) 모두가 텍스트로만 되어 있는 구조였으며, 이미지는 별로 사용을 하지 않았다.
이 말은 인터넷 접속 속도를 고려하여 로딩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미지를 통한 노출보다는 로딩 속도가 빠른 텍스트를 통해 빠르게 많은 정보를 접속자에게 노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의미이다.
아직도 가끔 웹서핑을 하다보면 초창기 형태의 웹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러한 사이트들은 대부분이 웹사이트의 70-80%가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 빈자리를 이미지가 차지하고 있다.
뉴스그룹(현재의 스크렙이나 XML 링크 등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이 한 때 인기를 얻었던 것도 자신이 필요로 한 자료를 텍스트를 중심으로 빠르게 검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군의 웹사이트 형태를 보면 색상 배치에 상당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단의 색이라고 주장하고 잘 사용을 하지 않는 색이나 채도가 낮은 색들을 그들은 거침없이 사용을 하여 비쥬얼 중심의 색상이 주는 이미지화 플러스 텍스트 위주의 구성에 그 촛점을 두고 있었다.
미주군과 틀린 점이 있다면 색채의 혼합이 화려했다는데 있다.
미주군은 블랙의 폰트 칼라가 기본이며, 배경의 페턴들도 단순 아니면 화이트 칼라를 위주였는데, 유럽군은 다양한 색채의 배합으로 디자인을 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배경색과 폰트의 컬러 사용에 일정화된 룰을 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과 융합이 되면 어떤 색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일본으로 넘어오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의 웹을 보게 된다.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만나게 되는 웹사이트의 형태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사용, 자기 작품의 전시 공간(우리가 갤러리라 하는)과 게시판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일본도 그 당시에 인터넷 회선의 속도도 느렸음에도 불구하고 과다한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사용을 하였다.
미국과 유럽의 웹사이트 형태를 합친듯한 느낌을 주는 일본의 웹의 형태는 자신을 이미지화 시킬 수 있는, 많은 이미지들과 일반 유저들과 쌍방향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는 게시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웹사이트의 유형이 나타난 직접적인 원인은 많은 아마츄어 에니메이션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인터넷이라는 전시 공간에 올리면서 자신의 작품을 이미지화 시켜 보여야했고, 이 작품들을 모아 놓은 갤러리 공간이 필요하여였고, 그리고 자신의 팬들과 혹은 다른 유저들과 정보를 교환할 목적으로 게시판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이러다 보니 이런 형태의 웹이 나온 것 같다.
현재에도 과거 형태의 게시판을 운영을 하는 사이트들이 많이 있으며, 일본의 웹 진화 모습은 개인들의 경우 많은 진보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 게시판으로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달을 하던 인터넷 문화가 국내로 넘어오면서 초기 일본식 웹사이트 서비스에서 점차적으로 진보와 자기 모색을 통하여 현재의 블로그 문화로 진보해 넘어온 것 같다.
국내에 이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유입이 되면서(파생적인 것이다라고 하면 할 말도 없고, 반박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초기에는 개인 홈페이지에 달리는 악세사리 정도의 역활을 하던 것이 싸이의 등장과 함께 일대 혁신을 가져 온다.
이 싸이의 등장으로 게시판 문화의 대중성이 시작이 되고, 일인 편집장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은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 그래픽과 태깅이라는 HTML을 공부해서 익혀야 하던 것을 마우스 버튼 클릭 하나만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실시간으로 홈페이지라는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토리 사건을 잘 알 것이다. 한 때 도토리가, 다람쥐가 먹는, 야생 동물들의 먹잇감인 이 도토리가 화재가 된 것이 이 싸이 열풍을 대변 해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후에 나온 블로그나 현재 즐겨 찾기가 가능한 XML 서비스들도 모두가 이 게시판 문화가 일보 전진한 형태이다.

현재 우리는 과거 텍스트만 올리게 되어 있던 일세대 게시판에서 이미지와 동영상을 추가 할 수 있는 이세대 게시판을 거쳐 이미지와 동영상을 자유자재로 삽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재 삼세대 게시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우리의 게시판 문화는 일차적으로 일본 게시판 문화를 나름대로 흡수하여 자기 변형을 가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 이유는 초기 인터넷 서비스에서 미국이나 그 당시 유럽 쪽에서는 게시판이라는 것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았던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었던 반면, 일본의 경우는 쌍방향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개념으로 성황리에 제공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게시판이 출현을 하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자기 변형의 아메바식 확장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